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우정교차로 옆에 걸린 수원전투비행장 이전 반대 현수막
“화성시 파괴하는 전투비행장 이전 결사반대!”
25일 화성시 곳곳에서 만난 현수막 글귀 중 일부다. 특히 수원공군비행장(수원군공항) 이전 예비이전후보지로 국방부가 선정한 화성시 화옹지구로 다녀오는 도로 곳곳엔 강력한 반대 의지를 담은 현수막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에코팜, 매향리 평화공원, 화성드림파크 무력화하는 화성시민 일방적 희생 강요하는 군공항 결사반대!”, “화성의 100년 미래를 전투비행장과 바꿀 수 없다, 수원군공항 이전 결사반대!”라는 글귀엔 화성시민들의 격앙된 심정과 결연한 의지가 묻어났다.
현수막 명의도 다양했다. ‘화성시의회 수원군공항 화성시 이전 반대 특별위원회’의 현수막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밖에 ‘우정읍 체육발전회’, ‘삼괴낙우회’, ‘삼괴발전협의회’, ‘(사)한국여성농업인화성시연합회’, ‘화성·오산지역건축사회’, ‘삼괴학원 운영위원회/학부모 일동’, ‘궁평1리 주민일동’, ‘해운초등학교 총동문회’, ‘상안2리 주민일동’, ‘서신면 용두리 청·장년회 일동’, ‘서신면 이장단협의회’, ‘송산면 이장단협의호’, ‘천주교 서신성당’ 등 실로 다양했다.
지난 2월 16일 국방부가 수원군공항 이전 예비이전후보지로 선정한 이후 화옹지구 일대엔 근거 없는 괴소문이 나돌았다. 조암터미널 인근에서 만난 김모씨(조암리 거주)는“이전 지역 땅 값을 시세 보다 8배나 보상받게 된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면서 “정말 그 정도로 보상해 준다면 땅을 팔겠다는 사람도 봤다”고 했다.
옆에 있던 최모씨(화수리 거주)는 “누가 주민들을 이간시키는 그런 말을 유포시키는지 모르겠다”며 “비행장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일부 땅값 보상을 기대하는 사람 외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매향리 평화마을 사무실앞에 미군 전투기의 해상 폭격장으로 쓰였던 농섬과 인근 갯벌에서 수거한 폭탄 껍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전씨는 매향리 미군공 폭격장(쿠니사격장) 폐쇄를 이뤄낸 ‘매향리주민대책위’ 위원장을 지냈다. 폭격장 폐쇄 이후엔 ‘매향리 평화마을 추진위원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투비행장 화성이전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공동상임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만규 씨
화성시민대책위 회의에 나갈 때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 우황청심환을 먹는다는 전씨는 “미 공군 폭격장으로 50년간 유린됐던 매향리는 상처를 씻고 생명과 평화의 공간으로 거듭나는 중이었다”면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특히 전씨는 “저는 수원시민들과 병점지역 화성시민들이 수원공군비행장 때문에 겪는 그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해결되길 바란다”면서 “수원전투비행장 이전 문제를 수원시민과 화성시민이 감정을 가지고 다툴 게 아니라, 더 좋은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직접 만나 대토론을 열자”고 제안했다.
“수원공군비행장은 화성시로 이전하는 게 아니라 폐쇄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화성으로 이전하는 비용이면, 다른 지역 군공항에 최신 전투기와 장비를 분산 배치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거든요. 국방력 강화 측면에서도 더 효율적이고,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연 생태계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유소년 야구공원 화성드림파크 공사가 한창이다.
미 공군의 해상 폭격장으로 쓰였던 ‘농섬’
갯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한 주민은 “쿠니사격장 때문에 겪은 소음 피해만 해도 정말 지긋지긋하다”면서 “50년 사격장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 좀 조용하게 사나 했더니, 전투비행장이 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울분을 토했다.
수원공군비행장 예비이전후보지로 선정된 화옹지구
화옹지구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사업을 맡아 마련한 간척지다. 화성시 우정읍·남양읍, 장안면·마도면·서신면 등 5개 읍·면에 걸쳐 있으며, 매립면적이 무려 6,212ha(간척지 4482만ha, 호수 1730만㏊)에 이른다.
화성호에서 만난 혹부리오리떼
이에 화성시와 화성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014년부터 화성호와 매향리 등 화성연안 주요 갯벌을 습지보호지역 지정 추진을 준비해 왔다. 올 상반기 중 해양수산부에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건의할 계획이다. 화성호는 람사르습지 선정 요건도 충족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처럼 갯벌과 간척지를 친환경적으로 활용하자는 이야기가 있는 와중에 전투비행장 이전 문제로 생태계에 빨간불이 켜 진 셈이다.
정한철 화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갯벌 연안이라는 자연유산은 ‘후손에게 빌려온 것’이라 할 만큼 소중하고 미래적 가치가 있다”면서 “화옹지구는 다양한 야생동식물과 2~3만 마리의 새떼가 살며, 짙은 해무가 자주 껴 전투기 운용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정 사무국장은 “갯벌은 농지에 비해 경제적 가치는 10배, 생태적 가치는 100배나 된다는 평가를 받고, 기후변화 시대에 뛰어난 탄소 저장 능력으로 그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면서 “화옹지구에 전투비행장이 들어서려면 성토(흙을 쌓음)를 해야 하는 데, 인근 산이나 바다흙을 준설하는 식의 공사가 필요해 또 다른 대형 환경파괴가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평화의 생명의 땅’을 알차게 가꿔가던 화성시의 화옹지구, 매향리 지역은 지금 큰 시련을 맞았다. 화성시가 추진 중인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유소년 야구메카인 화성드림파크, 서해안 해양테마파크 조성사업이 그 빛을 발하기도 전에 좌초될 것이란 진단도 나오고 있다.
과연 수원전투비행장 이전 문제의 올바른 해법은 무엇일까. 취재를 마친 뒤 궁평항을 거쳐 지나오는 길에서 본 현수막 글귀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군공항, 수원시민 잘 살자고 화성시민 죽이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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